전통과 트렌드의 맛있는 줄다리기: 붕어빵 논쟁과 일본의 이색 ‘나라빵’

퇴근길 지하철역 앞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붕어빵 노점을 발견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난제가 하나 있다. 바로 ‘팥’과 ‘슈크림’ 사이의 선택이다. 예전에는 그저 가벼운 우스갯소리로 넘겼던 이 논쟁이 요즘 들어서는 제법 진지한 고민거리로 다가오곤 한다. 혼자 먹기 딱 좋은 단위인 세 마리를 고르려다 보면, 정석 중의 정석인 팥에 무게를 둘지 아니면 입천장이 델 듯 뜨겁고 달콤한 슈크림을 하나 더 얹을지 갈등하게 마련이다.

이는 마치 영원한 스테디셀러와 톡톡 튀는 신예 사이의 치열한 신경전과도 같다. 오랜 전통 옆에 새로운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공존하는 모습은 비단 길거리 간식뿐만 아니라 트렌드에 민감한 직장인이나 기자들이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변화의 과도기와도 묘하게 닮아 있다. 어느 하나를 포기하기보다는 조화롭게 번갈아 즐기고 싶지만, 사람들의 취향은 제각각이기에 저마다의 확고한 기준을 세우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사슴도 사찰도 없는 의문의 지역 명물

재미있게도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이처럼 오랜 전통과 낯선 서구적 요소가 뒤섞여 폭발적인 호응을 얻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나라빵(Nara Bread)’이 그 주인공이다. 보통 일본에서 카레빵은 카레를, 야키소바빵은 볶음면을 품고 있는 직관적인 작명 방식을 따른다. 그렇다면 사슴과 유서 깊은 사찰로 유명한 나라시의 이름을 딴 이 빵 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

물론 사슴 고기가 들어간 것은 결코 아니다. 현지에서 사슴은 식재료가 아닌 공원에서 자유롭게 뛰놀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빵은 나라 공원 근처의 흔한 동네 빵집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연일 매진 행렬, 마침내 드러난 빵의 정체

오직 나라 공원에서 차로 40분 남짓 떨어진 ‘하리 테라스(Hari Terrace)’ 휴게소 내 지역 특산품점에서만 독점 판매되는 이 빵은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지 매체 기자 역시 여러 번 헛걸음을 치다, 운 좋게 갓 구워낸 두 번째 물량이 진열되는 찰나를 노려 간신히 손에 넣었을 정도다.

단돈 280엔에 판매되는 나라빵은 겉보기에 단단한 질감의 미니 바게트와 흡사하다. 하지만 오븐에 살짝 데운 뒤 반으로 가르는 순간, 빵의 진짜 정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속을 빈틈없이 채운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의 전통 절임 반찬인 ‘나라즈케(Nara-zuke)’였다.

전통 절임과 서양 소스가 빚어낸 훌륭한 앙상블

오이, 참외, 수박, 생강 등을 미소와 소금, 술지게미에 푹 절여 만드는 나라즈케는 특유의 짭조름한 감칠맛과 무알코올임에도 은은하게 배어나는 사케 향을 자랑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지극히 일본 전통적인 이 식재료가 서양의 빵, 그리고 마요네즈와 만나 기대 이상의 절묘한 조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낯선 조합에 처음에는 다소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지만,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빵의 바삭함과 절임 채소의 오독오독한 식감이 경쾌하게 어우러지며 미각을 사로잡는다. 자칫 강하게 튈 수 있는 나라즈케의 날카로운 풍미를 마요네즈가 부드럽게 감싸 안아 전체적인 맛의 균형을 훌륭하게 잡아주는 덕분이다. 성숙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 맛은 든든한 아침 식사나 출출함을 달래줄 간식은 물론, 퇴근 후 시원한 맥주나 칵테일 한 잔에 곁들일 안주로도 손색이 없다. 익숙한 전통 음식에 서양식 소스라는 새로운 변주를 가미해 완벽한 타협점을 찾아낸 나라빵의 매력은, 우리가 붕어빵 앞에서 팥과 슈크림을 두고 기분 좋은 고민에 빠지는 이유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