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육 현장의 두 얼굴: AI는 ‘최고의 선물’인가 ‘고립의 늪’인가
미국 뉴저지주 북부 퍼세익 카운티(Passaic County)의 한 고등학교 교무실, 이곳의 교사들은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해 채점 업무와 수업 계획 수립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진보가 학교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신중론 또한 만만치 않다. 맨체스터 리저널 고등학교(Manchester Regional High School)의 수학교사 션 몬티스(Sean Monteith)는 AI를 두고 “엄청난 선물”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올바르게 적용되지 않을 경우 자칫 “교육의 장벽”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효율성과 도덕성 사이의 줄타기
몬티스 교사는 생성형 AI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양면성을 지적하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학생들이 AI에게 질문만 하면 과거의 그 어떤 난해한 수학 문제도 즉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며, “이제 모든 수학 숙제를 대신 해주는 도구, 즉 ‘치트키’를 손에 쥐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핵심은 도구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몬티스는 “가능하다고 해서 무조건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다음 세대에게 ‘책임감 있는 사용’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교육자가 짊어진 가장 큰 과제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는 지난 12월 8일, 헤일던(Haledon)과 노스 헤일던, 프로스펙트 파크 지역을 관할하는 맨체스터 리저널 고교에서 열린 퍼세익 카운티 교육위원협회 집행위원회 발표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이날 발표에 나선 교직원들은 AI가 가져온 변화와 과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펼쳤다.
‘1인 1챗봇’ 모델과 고립되는 아이들
뉴저지 교사들의 이러한 고민은 사실 미국 전역의 교육계가 직면한 현실을 대변한다. 워싱턴 DC 소재 민주주의·기술 센터(Center for Democracy & Technology)가 10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교육자의 3분의 2 이상이 AI로 인해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고 답했다. 특히 학생이 제출한 과제물이 본인의 실력인지, 아니면 AI가 작성한 것인지 판별해야 하는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현재 기술 기업들이 추구하는 ‘교실 내 AI 도입’ 방식이 교육의 본질인 ‘사회적 상호작용’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인기 SF 시리즈 ‘스타트렉’의 세계관 속 벌칸 행성의 학교를 떠올려보자. 어린 아이들이 360도 디지털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포드(Pod)’ 안에 홀로 서 있고, 어른들은 그저 주변을 배회할 뿐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아이들은 오직 고도로 발달한 AI와 소통하며 수학부터 철학까지 문답을 주고받는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자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 같은 이들은 “모든 아이의 곁에 AI 튜터가 함께하며 발달 과정을 도울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이러한 스타트렉식 맞춤형 학습 모델에 열광한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인턴 생활을 거쳐 공립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디지털 미래의 약속은 겉보기에 화려해 보인다. 하지만 현재 사회과학자로서 학습 과정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작금의 ‘개별화된 AI 챗봇’ 모델은 학습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과정이라는 수십 년간의 교육 연구 결과를 간과하고 있다.
거대 자본과 행정 편의주의가 만든 압박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성형 AI의 K-12(유치원~고등학교) 교실 진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 휴스턴이나 마이애미와 같은 미국의 거대 학군들은 이미 수천 명의 학생들에게 AI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계약을 체결했다. 학생 수 감소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학군들에게 AI 도입은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교육 혁신을 주도한다는 ‘최첨단’ 이미지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압박은 산업계와 연방 정부 양쪽에서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어 생성형 AI를 개발한 테크 기업들에게 공립학교는 놓칠 수 없는 거대 시장이다. 여기에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역대 행정부들 역시 교육 분야에서의 AI 잠재력에 대해 맹목적인 열광을 보내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배움을 돕는 보조수단을 넘어, 교실 내 사회적 관계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과연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