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없이는 생각하지 못하는 세대
최근 미국 시카고의 한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의 고백은 교육계가 직면한 인공지능(AI)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경험을 넘어, AI에 깊이 의존하게 된 현 세대의 자화상이자 미래 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학교를 점령한 AI, 새로운 기본값이 되다
자정이 넘은 시각, 역사 에세이 마감의 압박감 속에 학생은 텅 빈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뒤죽박죽인 필기, 쌓인 피로감, 그리고 코앞으로 다가온 마감 시간. 과거라면 밤을 새워 과제를 해결해야 했겠지만, 이제는 ‘챗GPT’라는 손쉬운 해결책이 존재합니다. 단 몇 초 만에 완성된 에세이를 받을 수 있는데, 굳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을까요?
이것은 비단 성적이 낮은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 과목 A를 받는 우등생부터 토론 동아리 에이스까지, 거의 모든 학생들이 과제, 수학 문제 풀이, 스페인어 번역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AI를 활용합니다. 심지어 온라인 퀴즈 중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즉시 얻기 위해 AI를 사용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복도를 지나다 보면 “그냥 챗GPT에 물어봐”라는 말이 일상적인 해결책처럼 들려옵니다. 한 친구는 2학년 이후로 직접 에세이를 써본 적이 없다고 자랑하며,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약간 수정해 제출하는 방식을 “마치 누가 대신 해주는 것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AI 의존은 우리 세대에게 새로운 ‘기본값(default)’이 되었으며,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성적은 A, 사고력은 F: 지식의 착각
AI는 학업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구원투수처럼 보였습니다. 밤샘 없이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진정한 ‘학습’의 기회를 잃고 있었습니다. 에세이로 좋은 점수를 받아도, 정작 수업 토론 시간에는 그 내용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한 친구는 AI가 작성해 준 독후감을 자신이 요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했고, 또 다른 친구는 AI의 도움 없이는 수학 시험 문제를 풀 때 머리가 하얘진다고 토로했습니다.
우리 세대는 AI 덕분에 과제를 ‘수행’하는 방법은 알지만, 지식을 ‘학습’하고 내재화하는 과정은 생략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현실입니다. 학교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AI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고 해결하려는 의지 자체를 꺾어버립니다. 엔지니어를 꿈꾸는 한 친구는 모든 수학 과제를 AI에 의존하며 “대학 가서 제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과연 AI 없이 생각하는 훈련이 되지 않은 채로 대학의 고등 교육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화려한 성적표와 함께 무뎌진 사고력을 가지고 졸업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교육계의 딜레마: AI, 금지할 것인가 포용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에 직면한 교육계는 깊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일각에서는 학교에서 AI 사용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하지만 2023년 뉴욕시가 챗GPT를 금지했다가 불과 몇 달 만에 결정을 번복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AI 금지는 현실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습니다. AI는 이미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았으며, 이를 외면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현명한 사용법을 가르칠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2022년 챗GPT 출시 불과 두 달 만에 대학생의 90%가 이를 사용하고 있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으며, 현재는 그 수치가 100%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입니다. 학생들은 단순히 과제 작성을 넘어 아이디어 구상, 자료 조사, 문헌 요약 등 사고의 전 과정에서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뉴욕 매거진은 이를 두고 “모두가 대학 과정을 부정행위로 통과하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대학 행정가들은 이러한 상황에 속수무책인 듯 보입니다. AI 도구를 금지하면 학생들이 미래 사회에 뒤처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AI를 전면적으로 수용하면 독창적 사고 능력이 없는 세대를 양산하게 될 것이라는 반론도 팽팽합니다.
전문가들의 엇갈린 시선과 미래를 위한 제언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의 코너 그레넌(Conor Grennan) 교수는 AI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학생과 교육자들이 이를 잘 활용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스탠퍼드대 및 하버드대의 나일 퍼거슨(Niall Ferguson) 선임 연구원은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교실에서 AI를 대부분 금지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결과는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제는 현실적인 규제와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사고력을 직접 평가해야 하는 에세이, 프로젝트, 토론 과제 등에서는 AI 사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합니다. 교사는 AI가 복제할 수 없는 개인적인 경험과 연계된 과제를 설계하거나, AI 탐지 시스템을 통해 부정행위를 적발하고 강력한 불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반면, 자료 조사나 수학 문제 연습과 같은 초기 단계에서는 AI를 보조 도구로 활용하도록 허용하되, 문제 해결의 전 과정을 의존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AI의 위험성을 명확히 가르치는 것입니다. AI가 비판적 사고 능력을 약화시키고, 표절 문제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인지시켜야 합니다. AI 덕분에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쉬워질지 몰라도, 결국 사회에 나가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무력한 인재로 남게 될 것이라는 점을 교육해야 합니다.
AI 사용을 제한하면 당장은 학교생활이 더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의 본질은 단순히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창조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데 있습니다. 그 어떤 알고리즘도 우리를 대신해 이 과정을 완수해 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교육 방식의 변화에 대한 논의를 넘어, 인류의 ‘사고 능력’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문제입니다.